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두 번째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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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두 번째 걸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어린 왕자’를 읽으면 인간과 인생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다.

생텍쥐페리에게 모험은 자신의 소명을 숭고한 단계로 승화하는 활동이었다.

우리가 하는 건너가기도 사실은 모험이다.

인간답게 살명서 자신의 삶을 승화하고자 한다면 소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숭고하게 실현하려는 모험을 해라. 모험의 과정에서 너에게 죽음이 다가올지 모른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것이 삶을 가장 높은 단계로 승화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 왕자’에 나오는 어른들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한다는 것은 내 삶을 당당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와도 같다.

자신의 삶에 당당하지 못하다면 죽음에도 당당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의 불가분한 관계를 인정할 때 그만큼 삶에 철저하고 진지해질 수 있다.

‘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세상을 정해진 대로 본다.

어린이는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상자 속 양을 발견할 수도 있고, 보아뱀의 배 안에 코끼리를 넣을 수도 있다.

니체는 인간 정신발달의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이에 비유했다.

낙타는 온갖 짐을 지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 꾸역꾸역 간다.

사자는 낙타에 비해 나름 주도권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어린이는 자기가 삶의 동력 그 자체이다. 그리고 매사에 호기심이 넘친다.

내 안의 어린이의 마음을 갖지 못하면 죽음을 향해 가고, 사회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사회가 무덤이 된다.

모험하는 마음은 질문하는 마음이고, 건너가는 마음이고, 어린이의 마음이다.

호기심이 있는 사람만 질문할 수 있고, 모험할 수 있다.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대답만 하고 판단만 한다.

나 답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떠나지 않고, 건너지 않고는 어떠한 완성도 있을 수 없다.

인간으로 완성되고 싶다면 일단 떠나야 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 데미안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갈망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아니면 가질 수 없다.

어린 왕자에 길들여진 여우는 밀밭을 보면서 어린 왕자의 머리칼을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에게 특별해진다는 것은 그 특별함에 구속되는 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봐야 하는 거야. 근본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추상성이 높을수록 눈에 더 보이지 않는다. 추상성이 높은 것을 장악할수록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차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