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전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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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한국사 빌리러 도서관을 갔는데 없어서 ‘아틀라스’를 검색해보다가 찾게 되었다.
전차의 발전 이야기를 전쟁 때의 지도와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전쟁터에서 전차가 왜 생겼으며,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지도와 각종 자료를 망라하여 볼 수 있다.
또한 전차가 가장 극적으로 발전했던 2차 세계대전의 흐름과 양상이 중요한 전투별로 자세한 정보로 표현되어 있었다.
전혀 몰랐던 영역을 알게 된 재미있는 책이었다.
전차의 등장
1917년에 장갑과 대포로 무장한 전차가 처음 전장에 등장했다.
전차에 필요한 부품들과 개념들은 20세기 전에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무한궤도, 대구경 대포, 장갑판, 내연기관 엔진이 그것이다.
전차의 등장에는 이러한 부품들보다도 전장에서 ‘차량화대포’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했다.
1차 세계대전은 자신의 진지에 참호를 파고 싸우는 참호전이었다.
적의 참호를 극복하기 위해 독가스나 화염방사기 같은 무기들이 개발되었지만 전장에 결정적인 돌파를 부여 하는데는 기여하지 못했다.
새로운 무기는 기동성, 화력, 방어력 세 가지 요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했다.
당시 영국은 전차개발의 선진국이었다.
육군보다는 해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리틀윌리 Little While 라는 무한궤도 차량을 개발했다.
리틀윌리는 1.5인치 포와 기관총 1정을 장착하고 보일러용 강판으로 만든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이 차량은 훗날 마크I 전차 Mark I Tank 로 양산된다.
전차 Tank 라는 말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제작 중인 커다란 금속 구조물을 물탱크 water tank 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초기의 전차는 자주 고장나고, 참호를 통과하다가 처박히기도 하고, 서스펜션이 없어서 승무원들이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독일도 1916년 전차 설계를 재개했지만 기갑 전투 역량의 확보보다는 대전차 방어에 역점을 두었다.
그 결과물로 A7V 이 만들어졌는데, A7V 는 많은 인원이 타는 육상의 기동요새에 가까웠고 야지횡단 능력이 형편없었다.
또 다른 설계로 LK II 가 있었는데 참호를 돌파하는 능력은 떨어졌지만 일단 돌파가 되어 전과를 확대하는 단계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는 설계였다.
기갑부대
1차 세계대전 당시 기갑부대는 가시철조망을 치고 기관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채 참호 속에서 사격하는 보병의 방어력에 대한 대항책으로 창설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전인 18세기 19세기의 전쟁에서 사용된 보병의 무기는 사거리가 짧고 부정확했다.
하지만 곧 뇌관 격발식 소총과 장약과 탄자가 일체화된 탄약이 등장하면서 소총의 성능이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이런 보병 화기의 성능 개선은 전통적인 전열을 형성해서 공격해오는 방식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이런 성능 개선에 대한 대책으로 진지에 참호를 만들어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참호속에 있는 적을 몰아내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적이 쏘는 사격을 피해 개활지를 통과해서 참호 가까이 접근한 뒤, 폭발물을 투척하는 것이 그나마 방법 중 하나였지만, 그마저도 철조망의 등장으로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초기 전차의 역할은 적의 사격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면서 적에게 가까이 접근시키는 것이었다.
이 때에는 전차의 속력보다는 야지나 참호를 통과할 수 있는 야지횡단능력이 강조되었다.
또한,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기 위해 대포를 장착하는 것은 바람직했다.
영국에서는 대포를 탑재한 수컷전차와 기관총을 탑재한 암컷전차가 상호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차 역할을 분명히 하는 식으로 발전시켰다.
프랑스의 FT-17 전차는 회전포탑을 장착하여 무기의 수를 줄이고, 이에 따라 승무원 수와 무게를 줄인 설계로 탄생했다. 이 전차는 여러가지 면에서 현대적인 설계를 가지고 있었다.
전차는 집결한 상태에서 교전할 때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보병 방어용 자산으로도 인식되어 소단위나 1대씩 분산하여 배치하려는 압력이 상당히 강했다. (사나운 토끼 savage rabbits전략)
전차를 분산해서 배치하는 방식은 몇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특히 전차의 유지보수를 위한 예비부품과 연료의 분배였다.
초기 영국군 전차부대 편제는 전차 3대로 구성된 반 section 을 기본 단위로 했다.
전차부대의 경우, 다른 병과에 비해 더 많은 전문 인력과 근무지원을 위한 ‘후방제대 tail’ 가 필요했다.
전차부대와 예하부대를 지휘하고 관리하는 것은 어려웠다.
전차 내부의 시계가 제한되어있고, 전차들 사이의 협조와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그래서 실전에서 일단 공격이 시작되면 많은 전차들이 전차장의 독단적인 판단에 따라 이동하다가 무엇이든 표적이 나타나기만 하면 공격했다.
1차 세계대전
1차 세계대전은 교착상태의 참호전이었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은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는 희망으로 마크I 전차를 전장에 투입한다.
기관총과 철조망에 끄떡없는 모습을 보고 연합군의 사기는 높아졌고, 적군의 보병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당시 전차는 잦은 손실과 고장으로 큰 전과를 보이지는 못한다.
독일군 지휘관들은 전차의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고 느꼈고, 전차대신 보병의 대전차역량을 높이는데 집중한다.
독일 작전계획자들은 기갑 돌격에 대처하기 위해서 차량용 함정인 대전차호, 대전차총, 직접사격할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한 곡사포를 수단으로 삼는다.
캉브레 작전에서 영국군 전차가 대규모로 참여하여 독일군 참호를 건너 전과를 확대시키게 된다.
이 작전으로 역시 전차는 보병지원 병기로 속도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론이 증명된 것처럼 보였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서부전선에서의 전투 경험은 ‘오로지 적의 전투 자산하고만 교전할 경우 결정적 결과를 거의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전투에서 결정적 결과를 위해서는 군수역량을 노리는 것이 필요했다.
전차가 나오기 전에는 기관총과 철조망 등 방어자가 가지는 이점에 의해 적의 군수역량을 노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1918년 8월 휘핏 Whippet 의 활약을 계기로 전차부대에 의한 결정적 결과가 가능하다는 것이 시사되었다.
휘핏 전차들이 적의 방어선을 돌파했고, 그 중의 한대의 전차가 9시간에 걸쳐 적의 후방을 헤집고 다니면서 적의 방어선과 보급품 호송대를 괴멸시킨 것이다.
이 사건은 만약 일단의 전차부대가 적의 후방에 침투할 수 있다면 그 구역의 전투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공세의 주요 표적은 적의 전투병력과 방어지대였지만 영국군 장교인 풀러 Fuller 는 다른 두 가지 핵심표적을 제시하게 된다. (작계 1919)
적의 지휘통제 역량과 군수 자산이 그것이었다.
이 핵심표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돌파 능력보다는 순항 능력이 필요했고, 전차의 설계변경이 필요했다.
이런 풀러의 미래의 지상전 수행방식은 1918년 11월 11일 1차 세계대전 정전이 선언됨에 따라 실현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작계 1919 의 근간이 되는 사상은 기존의 보병지원 병기였던 전차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양차 대전 전간기
양차 대전 전간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기존에 남아있는 전차가 너무 많았던 탓에 새로운 전차설계를 게을리 하게 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기존의 장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점이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사상과 설계의 전차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으로 작용했다.
양차 대전 전간기에는 전차에 전투전차, 중형전차, 소전차 등의 개념이 생기게 된다.
왜냐하면 처음 장갑전투차량의 등장이 영국 해군에 의해서였기 때문에 해군의 전함, 순양함, 초계함 같은 역할을 전차에게도 부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전투전차에 전함처럼 다중포탑을 설치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많은 인원과 운용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게 된다.
소전차는 경장갑의 약점이 드러나서 더 두꺼운 장갑이 필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형전차의 기동력과 방어력, 전투전차의 무장을 결합한 주력전차가 등장하게 된다.
1930년대가 되면서 현대적 설계의 전차가 등장한다.
특히 전차의 속력이 50km/h 가 넘게 되는데, 이는 1차 세계대전에 10km/h 내외의 보병지원용 병기로써의 전차를 운용했던 것에 비해 그 운용방법이 많이 달라질 가능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승무원도 10명 넘게도 타던 것에서 4명 내외로 바뀌었다.
무장도 주무장으로 회전포탑에 달린 대포와 부무장으로 기관총을 탑재하는 구조로 어느정도 통일되었다.
전차를 운영하는 전술도 발전되기 시작한다.
소련에서 붉은 군대를 중심으로 종심돌파 Deep Penetration 이론이 생성된다.
종심돌파이론의 핵심은 적의 전선을 따라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공격하여 적의 고위 지휘관을 동요하게 만들어서 돌파 시도의 초점으로 식별된 곳에 예비대를 투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적의 전술구역 전선이 돌파되면 기동부대가 신속하게 적의 후방 깊숙한 직역을 타격하여 지휘통제소를 파괴하고 적을 총체적으로 교란시킨다.
이 종심돌파이론은 풀러의 작계 1919와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독일의 구데리안은 양차대전 전간기에 이론상의, 훗날 전격전 blitzkrieg 으로 알려지는, 전술을 실전에 적용한 인물이다.
전격전은 제병협동에 대한 정확한 이해해서 탄생했다.
제병협동 전술은 두개 이상의 병과가 상호 협동하는 작전이다.
- 전술항공기들의 공습이 적의 통신체계와 병력 이동을 막는다.
- 포병이 탐색을 위한 전차 공격의 진로를 연다
- 기갑부대는 결정적인 집중공격을 가해 돌파구를 확대한다.
- 보병과 대전차부대는 전차부대의 측면을 호위한다.
1930년대 말에 나치의 위협이 점점 커지자, 영국과 프랑스도 다시 신형 전차 설계를 재개한다.
프랑스는 전차 개발에서는 선도적인 역할을 했지만, 전장에서 전차를 전술적으로 배치하는 효과적인 방법론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 프랑스가 보유한 전차는 총 2,350대였고, 그중에 250대는 신형 전차인 소무아 Somua S35 였다.
소무아 S35 는 47밀리리터 주포를 탑재하고 있어 개전초기의 독일 1호전차의 무장인 20밀리미터 기관포에 비해 압도적인 능력이 있었다.
따라서 초반의 프랑스군이 조국을 방어하면서 대체로 실망스러운 전적을 보여준 책임은 무기보다는 지휘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미국인 공학자 월터 크리스타 Walter Christie 가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개발하게 된다.
크리스티 현가장치 덕분에 전차의 속력과 야지횡단능력이 개선되고, 차체높이도 낮아져 취약성이 줄었다.
소련은 이 크리스티 현가장치를 수용해서 전설의 T-34 중형전차를 생산하게 된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발발직전인 1939년에 2만대에 달하는 전차를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큰 기갑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 뒤는 3,500대를 보유한 독일이었다.
미국은 자국의 엄청난 산업역량에도 불구하고 보유 중인 전차가 100대에도 미치지 못했다. 대신 미국 군사당국은 장갑차량에 필요한 부품들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2차 세계대전
독일군은 소련군과 함께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했다.
이 침공에서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과 그의 기갑부대는 세상에 전격전이라는 개념을 선보이게 된다.
당시 침공에 사용한 전차는 약한 장갑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1호 전차, 2호 전차였다.
이 후 무장과 방어력을 개선한 3, 4호 전차를 생산하게 된다.
3, 4호 전차는 적의 전차를 상대할 수 있게 37밀리미터, 75밀리미터의 주포를 탑재하고, 작전범위도 대폭 향상된 모델이었다.
폴란드는 경전차와 개조를 통해 대전차포를 장착한 전차 등이 있었지만 보유 대수가 800대 정도 였고, 무엇보다 독일 지상군의 신속한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대규모 작전 능력이 없었다.
결국 폴란드는 1달여만에 나치에 점령된다.
1940년 5월 10일 독일은 아르덴 숲을 통과하여 프랑스를 공격한다.
프랑스는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은 마지노선이라고 알려진 강력한 고정요새 지대가 있어 안전하다고 믿었다.
마지노 선은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독일 침략에 대한 억제수단으로 구축한 것이었다.
이 마지노선같은 고정요새의 약점은 적이 신속하게 우회기동한다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소무아 S35, 샤르 B1 bis 전차를 보유하고 있어서 독일의 1, 2, 3, 4 호 전차보다 대등하거나 심지어 성능이 우월했다.
하지만 프랑스의 지휘관들은 전차를 보병부대를 지원하는 역할로 격하하였고, 소단위 분산 배치하는 프랑스의 기갑전 교리는 장비의 우위를 무색하게 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을 위대한 ‘민주주의의 무기고’라고 부르며 의회에서 무기대여법 lend-lease Act 을 밀어붙인다.
이 법으로 나치와 싸우고 있는 국가들은 신용거래로 전쟁 무기를 획득할 수 있었다.
1941년 6월 22일 주축국은 소련을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했다.
소련군은 수적으로는 11,0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중에 1,500여대만이 신형전차였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는 모스크바가 함락될 뻔 할 정도로 밀린다.
독일군의 전진이 계속 되자, 스탈린은 소련의 생산시설을 분해하여 우랄산맥 동쪽의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생산을 재개한다.
1940년에 T-34 전차가 첫 양산에 들어가게 된다.
T-34 전차는 1940년에 115대를 생산하고, 다음해에는 2,800대를 생산, 1944년까지 총 34,780대를 생산한다.
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소련은 T-34 와 T-34/85 를 57,000대 정도 생산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독일은 5호전차 판터 6,500대, 6호 전차 티거 I, II 를 2,000 대 정도 생산한다.
독일군은 T-34 중형전차의 양과 질을 따라갈 수 없었다.
대전차 무기
전차는 속력, 화력, 장갑방어력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했다.
비록 전차가 전장에서 강력했지만 상부의 약한 장갑을 공격할 수 있는 항공기의 공격에 취약했다.
독일 공군의 융커스 Ju-87 급강하폭격기들은 폴란드의 전차를 파괴했다.
서부전선에서는 연합군의 리퍼브릭 P-47 선더볼트나 호커 타이푼의 전폭기가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가장 효과적인 대지공격기는 소련 공군의 일류신 II-2 였다.
일류신 II-2 는 강력한 무장과 방어력으로 공중 전차 Flying Tank 라는 별명이 붙었고, 독일 전차 승무원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가 수행해야하는 역할이 많았다.
정찰이나 돌파구 확대를 위해서는 속력이 우선시 되었다.
보병지원이나 전차전에서는 방어력이 전투의 결과를 좌우했다.
이렇게 전차에 요구되는 역량이 증가함에 따라 연합국과 주축국은 서로 대조되는 관점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독일은 더욱 공학적으로 우수한 전차를 강조한 반면, 연합국은 장갑과 무장의 성능보다는 대량생산을 강조하게 된다.
양측은 적의 전차만을 전문적으로 파괴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세대의 장갑전투차량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런 장갑전투차량은 88밀리미터 정도의 무장과 가벼운 장갑, 빠른 속력이 특징이었고, 주로 매복해 있다가 표적에 사격을 가한 다음 전투에서 이탈하는 방식으로 싸웠다.
바주카, PIAT (Projector, Infantry, Anti-Tank), 판저파우스트 등 보병용 대전차 병기도 개발되었다.
이런 무기들은 저렴하고, 방어에 유리했지만 사거리가 짧다는 단점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주요 교전국들은 전차와 장갑전투차량 생산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이와 동시에 전장이라는 실시간 성능시험장에서 차량들의 다양성과 전투 역량이 급속하게 발전했다.
미국은 88,000대의 전차와 자주포를 생산했고, 소련은 10만대가 넘는 생산량을 기록했다. 독일은 46,000여대를 생산했다.
전쟁 발발 시점에 독일은 전차의 개발과 생산, 전술에 관한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군사강국이었다.
하지만 양보다 질을 중시해 전장의 손실을 쉽게 대체할 수 없었던 반면, 연합군은 공군의 절대적 우위와 장갑차량의 수적 우위로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독일의 티거전차는 1.6킬로미터 밖에서 연합군의 탱크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주포와 정밀한 광학조준기를 탑재한 전차였다.
티거전차는 연합군 전차를 상대로 6:1 의 살상률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쿠르스크 전투에서 소련의 전차들은 장거리에서 우월한 독일의 판저, 티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면서 싸웠다.
연합국에서는 M4 셔면 중형전차가 있었다.
대량생산을 고려해 설계된 이 전차는 거의 5만대가 생산되었다.
초기 셔먼 전차는 무장이 약하여 먼거리에서 공격가능한 티거에 대항해 4~5대의 전차가 필요할 정도였다.
이후 무장이 개선된 셔먼 파이어플라이가 생산되면서 어느정도 대항할 수 있게 된다.
셔먼의 장점은 속력이 빠르다는 점이었고, 압도적인 수였다.
셔먼전차는 유럽전장에서는 적을 숫자로 압도해야 했던 반면, 태평양에서 일본군 전차를 상대로는 확실히 우월했다.
냉전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새로운 전투 장비들이 개발되고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국가들 그리고 비동맹 국가들의 기갑부대 역량이 개선되었다.
전차의 개념도 전환이 일어나서 경무장에 정찰 임무를 하는 전차와 중무장으로 적과 전차전을 벌이는 전차로 나뉘는 전문화 개념이 사라지고, 주력전차 Main Battle Tank, 즉 MBT 의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
전술적 배치에 대한 요구사항이 강화되면서 주력전차의 전투능력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자동장전체계는 사격 절차의 오류를 줄여 발사 속도를 향상시키고, 가스터빈과 결합된 디젤은 더욱 빠르고 정숙한 주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전장지휘체계는 전차장이 동시에 다수의 표적을 추적하고 피아식별을 빠르게 할 수 있게 도와주며, 사격통제장치는 밤이나 악천후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
전차는 현대 전투 공간에서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진화를 계속해야 한다.
중장갑전투차량이 당면한 주요 문제 중 하나는 엄청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헬리콥터와 미사일이 적의 전차를 파괴할 수 있고, 경장갑차가 보병을 지원할 수 있다면 전차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전차는 화력을 집중시키고 승무원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때문에 전차는 선봉부대 역할을 수행하고, 적의 강력한 저항을 받을 때도 전진할 수 있다.
또한 적의 지휘와 군수자산을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은 추가적인 전투를 불필요하게 만들기 때문에 생명과 돈을 모두 아낄 수 있다.
따라서 여전히 전차는 비용대비 효율이 높은 투자이다.
더 값싼 전차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분쟁지역에서는 전통적인 전차전보다는 특정 지역을 확보하려는 보병을 지원하는 역할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 치안활동과 보병지원에 최적화된 경량차량들이 필요하다.